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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재활

[13회] 2018년 2월 그 말을 하는 줄리에타의 눈 밑이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새카맸다. 험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날 즐겁게 해주는 이 가여운 딸랑이를 위로해야겠다. "대공비를 이해는 하지만 몹시 불쾌하네요. 에스메랄다 전하를 무시한다는 것, 잘 알겠어요. 하지만 줄리에타를 봐서 참죠." "정말... 미안해요." "뭐, 줄리에타는 아직 피뇨르 영애잖아요?" "고, 곧 차노트 대공비가 될 거니까요!" 꿈도 야무지다. 대공도, 대공비도 아직 내려올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 내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는 조금 빨리 내려와 주는 편이 좋겠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토라져서 입술을 삐죽이는 줄리에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가 차고 있던 팔찌를 손목에 채웠다. "어? 이건 빅토리아가 좋아하는..." ".. 더보기
[12회] 2017년 10월 "영애 덕분에 인력손실 없이 일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올리비아 로슈민은 예법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로 웃었다. 아홉살에 못 미더운 얼굴로 저택을 떠나간 예법선생의 얼굴이 겹쳐보인다. 내가 날뛴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아누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요새는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다. 건방져보이지는 않겠지. 마탑의 미움을 사고싶지는 않다. 돈이야 얼마든지 쏟아부을 수 있지만, 역시 황실의 일원과 척을 지는 것은 무섭다. 서류를 돌려줬지만 모자도 망토도 가져갈 생각이 없어보인다. 다른건 몰라도 이 학파장 망토만큼은 제발 가져가줬으면 좋겠다. 아마 로슈민령까지 내 소문이 퍼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쇄 드레스 살인마에게 옷을 맡기다니. "꿈은 좀 어떤가요?" "요새는 통 꾼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더보기
[11회] 2017년 9월 하반기 당신의 귀염둥이는 내가 잘 데려갈테니 잊고 새 사람을 찾아보라 이말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에들턴의 앞을 슬쩍 가로막으며 에스메랄다를 쳐다봤다. 기가 차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지만 제가 어쩔건가? 황족이 평민과 놀아났다가는 타국에 비웃음사기 딱 좋다. 특히 그것이 남자귀족이 아닌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네가 나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후회해라. 에스메랄다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이어 들려온 노크 소리에 얼굴을 폈다 "무슨 일이냐. "티모시 리클렌 공자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어머. 사랑하는 님께서 오셨네요. 문이 열리기 직전 에스메랄다가 역겨워하는 얼굴로 소리없이 혀를 찼다. 그러던 말던 문쪽을 열렬하게 바라봤다. "가문의 천덕꾸러기가 기별 없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오라버니는 나를 질질.. 더보기
[10회] 2017년 9월 상반기 마법사는 벌벌 떨면서 보자기에 뭔가 마법까지 건다. 하지 말라고 하면 억지로 풀지는 않을건데 과민반응할 것까지야. 어깨를 들썩이니 에들턴이 등을 받쳐 일으켜줬다.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지긋이 쳐다봤지만 아무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분 계신가요?" 모두들 마법에 걸린것 처럼 조용해졌다. 모두가 서로에게 미루며 눈짓을 열심히 하더니 결국은 책임소지가 어느정도 있는 주최측에서 제일 끗발이 딸리는 줄리에타가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빅토리아에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내가 당사자인데... 보호자도, 친인척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상황설명을 듣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마법사 레녹스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는 찔리는 것이 많은 얼굴로 어색하게 .. 더보기
[9회] 2017년 5월 하반기 "아니 이게 누구야. 줄리에타 님.!내가 당신 못 오게 하려고 이 높은 곳으로 이사했는데!" "걱정 마. 오늘은 내가 아니라 이쪽 영애가 당신한테 볼 일이 있는걸. 이 자가 마법사 레녹스예요." 분명 마법사라던 레녹스는 소매에 잉크를 흠뻑 묻히고 있었다. 까맣게 물든 손끝으로 볼을 긁었다. 그대로 잉크가 묻어나온다. 맙소사. "뉘세요?" "빅토리아 리클렌.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저는 좀 비싼 사람이라..." 엄지와 검지를 말아붙여 눈가에서 흔들어보인다. 감히 대공가에 고용된 마법사가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다니. 이 정신나간 작자를 어찌하면 좋을까. 이래서는 대공이 정말 급할 때 쓸모가 없으리라 장담한다. 금화를 하나 던져주자 대번에 눈빛이 변한다. 입맛을 다시는 그에게 줄리에타가 분통을 낸다. "레.. 더보기
[8회] 2017년 5월 상반기 지금 내가 체면 따질 때가 아니다. 내 목숨을 지킬 사람이 한명 뿐인데 앓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샐리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에들턴은 상경해 기사가 되기 전까지 귀족과 마주할 일이 전혀 없었는지 사양할 줄을 몰랐다. 점점 후덥지근한 공기가 몰려오는 가운데 마부가 말을 멈춰세웠다. "리클렌 영애.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편한대로 해요." 앞서가던 에들턴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 마차로 다가왔다. 제대로 살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옆에 있는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여차하면 대신 칼 맞으라고 하고 도망치라고 보낸 거니 잘 쓰겠습니다. 에들턴은 나무 밑에 말을 묶어놓고 정작 마차에는 못 들어와서 한참 머뭇거렸다. 발소리만 한참 들리다 만다.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더보기
[7회] 2017년 4월 하반기 오라버니의 시도는 소용없는 짓이였다. 옥사나는 혼자 오지 않았으니까. 갑작스러운 소란에 이쪽을 쳐다보던 크로노스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내 주위를 배회하며 시비를 걸 준비중인 샬럿 노먼말고는 딱히 붙잡을 사람도 없었다. "노먼 영애. 와주셔서 감사해요." "영애 얼굴은 보고싶지 않지만 부인의 체면을 생각해서 온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연신 둘러보는 것이 다른 목적이 있어서 왔다고 대놓고 광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자 네가 찾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단다. 드레스 자락을 부여잡고 초조해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부모님이 막았는데 몰래 뛰쳐나온 모양새다. 어쩐지. 드레스가 연회에서 입기에는 조금 수수한 편이더라니. "요새 연회에서 늘 알버트의 에스코트를 받았는데, .. 더보기
[6회] 2017년 4월 상반기 감옥은 매일매일 환기를 해도 퀘퀘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 곳인데 벌써 세달간 방치해뒀으니 그 냄새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창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대기마법으로 공기를 순환시켜도 찜찜한 건 내 코에 남아있는 잔형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해야한다. 만약에 절대로 안빠질 냄새가 되었다면 죄수 선배들한테 너무 미안해진다. "메리다... 우리 귀여운 막내가 길드에는 어쩐 일일까..." "몰라... 니가 가서 물어봐. 나는... 논문을..." "안돼... 내 인상이... 너무 험악해서..." 일단 당사자가 눈앞에 있으면 그냥 직접 물어보는게 나을텐데 말이다.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내외하시는 수줍은 선배님들을 하나둘 수거해서 제자리에 앉혔다. "죽기 싫어서 도망쳤어요. 스승님이 데려다주셨거든.. 더보기
[5회] 2017년 3월 하반기 우리 영감님은 기가 막히게도 내 구구 마법이 사라지자 마자 곧장 수도로 날아 오셨다. 그 불량배도 마법사는 마법사인지 프라우 마법 보조 시설의 구조를 정확하게 외우고 있다가 그곳으로 이동해서 왔다고 한다. 그 인간은 역시 아르카나가 아니라 크로노스인게 분명하다. 아르카나가 어떻게 마법진을 정확하게 외우고 있지? 미친놈이거나 마법에 독보적인 재능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나도 수도에 십칠년 살면서 마법 배우는 동안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어 겨우 외운 걸 어떻게 "한번 쓱 보고 외웠어" 따위로 둘러대지? 정말 급하긴 급했던 모양인지 길드 밖으로 나갈 때는 꼭 걸치던 대장 망토도 잊어버리고 온 것이 조금 짠하기는 하다. 아니, 내가 지금 누구를 동정해? 앞으로 저 인간 수발 들으려면 내 코가 석자다. "내놔... 더보기
[4회] 2017년 3월 상반기 나는 바보다. 멍청이다. 구제불능이다. 전생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못했고, 이번 생에는 마법 말고는 머리도 못 굴리는 멍청이다. 내 앞에 서서 금방이라도 내 목을 칠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친애하는 빅토리아 리클렌 양이시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왜 사니? 아니 왜 환생했니? 너는 쓸모가 없다. 그냥 죽어라!" 따위의 막말을 쏟아내고 계신 리클렌 영애를 보고있자니 점점 더 작아진다. 그러니까 내 아주, 아주 작은 실수이자 엄청난 변화는 다섯달 전, 위대하신 우리의 지도자 빅토리아 리클렌 님께서 나를 친히 아르카나 학파에 꽂아준 날부터 시작됐다. 마법사 길드가 다 그렇듯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방이 먼지 투성이에 사람이라곤 프론트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당직 마법사가 전부다. 손가.. 더보기